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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심리운동의 시작은 자연놀이(기고 글) 조회수 : 2418
  작성자 : 박주부 작성일 : 2012-09-20
[함께웃는날 15호]

심리운동의 시작은 ‘자연 놀이’
- 장애청소년들의 숲속 심리운동 -


심리운동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심리운동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라서 이론적 설명은 어렵지만, 경험을 이야기할 수는 있을 듯싶다. 발달장애청소년들과 몸을 부딪치고 움직이며, 함께 즐긴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호에서 한국심리운동협회 회장인 백운찬 선생님이 심리운동의 뜻과 원리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심리운동에서 신체경험의 의미와 함께 거미줄 탈출, 컵받침 놀이, 사고 조사반 등 흥미 있는 움직임 활동 사례를 소개해주셨다.
심리운동의 영역을 보통 신체경험, 자연경험(물질경험), 사회경험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이번에는 자연경험이 심리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장애청소년들과 함께 숲속 심리운동을 해왔던 사례를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발달지원 교육방법으로서의 심리운동이 아동의 발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잠시 이야기하려 한다.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 발달지원 활동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으악! 무서워

서울 강북지역에서 장애청소년들을 위한 여름 계절학교를 개최하면서 북한산에 가게 되었다. 내 딸을 포함해 여덟 명의 청소년들과 숲속에서 몸도 풀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였다. 숲속에 더 깊이 들어가 탐색을 하기로 했는데, 겁이 많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탐색하게 할까 고민하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가장 무시무시한(?) 체험을 시켜주기로 했다.
고목의 구멍을 탐색해보면 어떨까 제안했더니,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좋아요”라고 소리를 쳤다. 그래서 나무 구멍 속에 직접 손을 넣어보기로 했다. 참나무 고목의 밑동에 나 있는 컴컴한 구멍 속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시커먼 구멍 속에서 썩은 나무 냄새가 진동하고, 개미와 온갖 이름 모를 벌레들이 우글거렸던, 무엇이 들어 있을까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그 때의 기억이 말이다.
나무 구멍에 손을 넣는 시범을 보이고는 덩치가 큰 고등학생에게 먼저 손을 넣어 보고서 느낌을 말해 보라고 했다. 멋모르고 좋다고 했던 그 녀석은 머뭇거리며 손을 반쯤 넣었다가 “으악! 무서워” 소리를 지르고는 뒤로 물러났다. 옆에 있던 제법 씩씩해 보이는 다른 남학생의 손을 붙잡으며 넣어보라고 했지만, 겁을 먹었는지 아예 도망쳐 버렸다.
“괜찮아! 안 보이긴 하지만 그냥 나무일뿐이야.” 안심을 시키며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준 후, 지적장애청소년인 내 딸에게 손을 넣어보라고 했다. 평소 호기심도 많고 겁이 없어서인지 신기한 표정으로 나무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다. 그렇지만 좀 무서웠는지 “으흐~ 뭐가 나올 것만 같아요”라며 엄살을 떨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구멍에 손을 넣어 보았고, 이를 본 다른 아이들도 살짝 손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도망쳤던 녀석까지 불러 모두 손을 넣어보게 했다.
나무 구멍에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나무껍질에 젤리처럼 붙어있는 미끈미끈한 수액들을 만져 보기로 했다. 호기심 많은 어떤 아이는 처음엔 살짝 건드리다가 보드라운 느낌에 신기한 듯 계속 만지작거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겁먹은 표정으로 물러서거나 조금 만지고 나서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시커먼 나무 구멍 속에서 손을 꽉 물어버리는 사슴벌레며, 개구리나 뱀이 불쑥 튀어나왔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나도 좀 으스스했다. 하지만 그날 함께 간 장애청소년들은 숲속에 있는 나무와 흙, 낙엽과 무성한 수풀을 직접 만져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무서웠을 것이다.
장애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자연과 사물을 경험할 기회가 적으면 자연 물질을 스스로 탐색해 보려는 용기를 내기 어렵게 되며, 이와 같은 정서적 상황은 아이들의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심리운동은 자연에 대한 경험과 지각, 사물과 놀이 도구에 대한 탐색의 기회를 줌으로써 아동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촉진한다. 숲속에서의 심리운동은 독일 자연학교, 숲속 유치원 등에서는 일상화된 프로그램이다.


사례: 숲속 풍선공 올림픽

숲속과 같은 자연환경에서의 놀이는 심리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신체경험, 자연경험, 사회경험 등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숲과 나무, 흙과 들판, 물과 신선한 바람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은 다양한 움직임과 지각에 대한 가능성을 아동에게 제공하는 매혹적인 공간이다. 자연 속에서 다양한 자연물을 소재로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신체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지각할 수 있으며, 또래들과의 놀이 속에서 다양한 사회관계(상상놀이)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 숲속에서 중․고교 장애청소년들을 지도하며 함께 즐겼던 심리운동 놀이를 하나 소개해 보기로 한다.

♣ 주제: 숲속 풍선공 올림픽(1차 풍선 배구, 2차 풍선 배구, 풍선 배드민턴)

♣ 장소: 북한산 숲속 배드민턴장

♣ 놀이도구: 큰 풍선(지름 80센티미터 정도), 작은 풍선, 배드민턴 채(옷걸이에 스타킹을 덮어 만든 것)

♣ 목표: 신체조절 및 협응 촉진, 사회성 향상, 적극성 강화

♣ 놀이과정

① 도입
․ 북한산 숲속에 있는 배드민턴장까지 남학생 6명, 여학생 2명 등 8명이 짝꿍을 정해 산책을 했다. 짝꿍 선택은 저학년, 자폐성장애청소년에게 선택권을 주어 가위 바위 보로 정했으며, 여학생 2명은 하나의 짝으로 맺어 주었다. 짝꿍과 산행을 하면서 별명 지어주기를 간식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 코알라-코끼리, 반달곰-북극곰, 착한학생-박하사탕, 뱃살공주-작은거인 등 멋진 별명을 가진 네 개의 짝꿍 팀이 만들어졌다. 짝꿍에게 별명 지어주기, 자기 소개하기 과제를 부여하여 친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성을 강화하려고 했다.

② 활동
․ 숲속 공터에 있는 아담한 배드민턴장에서 간식을 먹고 나서, 잠시 ‘나처럼 해봐요’ 흉내 내기 놀이로 몸을 풀었다. 응원전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팀 대항 형식의 풍선공 올림픽을 열었다. 이러한 게임 활동은 둔감한 친구들에게 활력과 의욕을 주고, 응원과 격려를 통해 또래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 느리게 움직이는 큰 풍선공은 움직임이 둔하고 신체 조절이 어려운 발달장애청소년들도 잘 다룰 수 있는 운동 도구다. 특히 대통령 풍선이라 불리는 아주 큰 풍선은 굼뜬 아이들도 다룰 수 있어 누구나 좋아하였다. 2차 풍선 배구는 작은 풍선을 넘기는 게임으로 약간 더 빠른 템포로 진행되며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스타킹으로 만든 채로 풍선공을 넘기는 배드민턴은 좀 더 어렵고 또래와의 긴밀한 협력을 요구한다.
․ 풍선공 게임은 터치하는 횟수와는 상관없이 상대편 코트로 공을 넘기면 되는데, 세 차례 경기 모두 코알라-코끼리 팀이 전승을 이어갔다. 코끼리 친구의 운동감각이 너무나 뛰어났고 승부욕이 강했다. 하지만 나머지 3개 팀도 모두 한 번씩 준결승에 진출하여 챔피언에 도전하는 파이팅을 보여주었다.

③ 이완
․ 숲속 심리운동 후에 보통은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나 음악을 들으며 근육을 풀어주고 명상을 하면서 이완의 시간을 갖는다. 신체를 활발히 움직이는 게임을 하며 땀범벅이 되었으므로 아이들은 우선 음료와 간식을 먹으면서 땀을 식혔고, 게임에서 아쉬웠던 순간과 다음번의 도전을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떠들면서 스스로를 이완시켰다.
․ 이러한 경험은 그들의 마음속에 자아감을 심어주고, 해가 바뀌면 또래 친구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 피드백

․ 또래 인식과 상호작용이 어려운 자폐성장애청소년은 짝꿍이나 별명의 개념을 어려워했고, 게임 중에 자신과 짝꿍을 혼동했으므로 적절히 또래관계를 중재하고 도와주었다.
․ 게임 중에 짝꿍보다 운동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게임에 참여하도록 유도했고,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과제를 부여하였다(예: 코알라는 코끼리 보다 움직임 능력이 아주 떨어져서 대신 서브를 많이 넣게 함).
․ 두 명의 청소년은 처음엔 풍선이 터질까봐 무서워서 접근하지 못했다. 응원만 하다가 조금씩 풍선을 터치하게 하였다. 간혹 풍선이 터지기도 했지만 이에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이제는 풍선이 무섭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 뚱뚱해서 움직이기 싫어하던 북극곰이 게임 중에 몸을 던지는 슬라이딩 캐칭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놀라운 파이팅을 칭찬하고 격려해주었다.


심리운동: 놀면서 성장한다

심리운동(Psychomotorik)은 독일의 키파드(Jonny Kiphard)가 창안한 개념인데, 독일 원어만큼이나 국내에서는 아직도 생소한 느낌을 준다. 체육학을 공부하던 키파드는 심리적으로 효과가 있는 운동의 치료적 가능성에 주목하여 『움직임이 치료한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심리운동적 연습치료』(1960)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키파드는 심리운동을 “전인적이고 인본적이며, 발달에 적합하고, 아동에 적합한 운동교육”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심리운동의 목적은 아동의 욕구를 간과하기 쉬운 능력주의나, 아동의 단점․이상행동․부족함만을 보는 결점 지향에서 벗어나 체험 중심, 개인성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아동이 자유롭게, 놀이처럼, 강요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표현하고 온전히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요약을 하자면, 심리운동은 신체경험을 매개로 하여 자율적인 움직임과 놀이 체험을 통해 아동의 전인적 발달을 추구하는 운동교육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심리운동은 아동발달 이론가인 피아제의 입장을 따르는 편이다. 아동의 발달은 바로 자아의 발달이며, 자아경험의 핵심이 곧 신체경험이다. 신체경험을 통해 자아감을 획득하게 되고, 상황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믿는 확신을 통해 아동은 발달한다. 자발적인 움직임, 놀이를 통한 성공의 경험은 자신감을 가져오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심리운동은 유럽에서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 신경생리학, 몬테소리 감각교육, 리듬-음악교육, 인본주의 심리학, 구성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치료적 활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장애의 정도와 무관하게 아동을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인본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며, 움직임 이후 긴장을 풀어주는 이완과 휴식 과정을 통해 내면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움과 해방감을 추구한다.
심리운동은 장애아동을 위한 운동교육 및 치료의 개념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교육 영역으로 확장되어 왔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발달상의 어려움을 가진 아동이 학교에서 체육 외에 심리운동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수학이나 국어 과목 등에서 심리운동 개념을 활용한 다양한 신체감각 학습방법이 실험되고 있다. 몸으로 익힌 것은 더 쉽게 이해되고, 오래 기억되고, 더 풍부하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심리운동은 아동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정서지원 활동, 더 나아가 뇌손상 환자나 노인 등 성인층에게 까지 확대 적용되어 의료재활과 모든 연령층을 위한 전인적 교육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에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처음 소개된 후 독일 심리운동협회와의 교류를 통해 발전해 왔고, 주로 장애아동을 위한 발달지원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심리운동이 아동을 위한 전반적인 건강지원 활동으로 조명되고 있으며, 보건의료 분야 일반에서도 사회 환경적 치유를 위한 유력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리운동이 아동의 발달지원 뿐만 아니라, 성인기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정서적․문화적 활동으로 자리 잡아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박인용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청소년을 양육하는 부모활동가로 ‘함께가자아동발달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심리운동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inyou8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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